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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인간은 어떻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현대인의 삶에서 돈은 떼어놓기 어려운 존재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돈을 사용한다. 경제 활동은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돈은 그 과정에서 가치를 주고받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그러나 생활의 수단이었던 돈이 어느 순간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더 많은 돈을 가지려는 욕망이 삶의 다른 가치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인간과 돈의 관계도 달라진다.

신세철 저자의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이러한 문제를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경제적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욕망을 지닌 인간이 돈을 어떻게 다루고, 경제적 안정과 인간적인 삶을 어떻게 함께 추구할 것인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돈은 인간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돈은 경제 활동에서 가치를 주고받는 수단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돈이 단순한 생활 수단을 넘어 욕망을 물질로 환원한 상징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것과 돈을 더 많이 가지는 것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다르다.

저자는 돈을 통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해결하려는 상태를 ‘돈으로만 고칠 수 있는 마음의 병’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더 많은 돈을 가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돈만으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돈의 많고 적음만이 아니다. 돈을 원하는 자신의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돈을 자신의 삶에서 어떤 위치에 두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욕망은 인간을 발전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만 보면 욕망을 버리거나 억제하는 삶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적 인간의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이루려는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경제적 욕망 역시 삶의 안정과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문제는 욕망의 존재보다 욕망에 대한 집착이다.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소유하려 했는지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일 자체에 매달릴 수 있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이러한 상태다. 욕망은 삶을 앞으로 움직이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을 지배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경제적 안정과 인간적인 삶의 균형

인간은 경제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의지와 이상을 펼치려는 존재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다르다. 돈과 경제적 안정이 중요할 수 있고, 자신의 이상과 자부심, 마음의 여유도 중요할 수 있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특정한 목표 하나에 지나치게 치우치기보다 삶의 여러 가치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것과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서로 반대되는 목표로 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욕망이 삶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다른 가치들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은 돈을 포기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자신의 삶에서 차지해야 할 위치를 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욕망을 안으로부터 조절하다

그렇다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는 돈과 자본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욕망을 ‘안으로부터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욕망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왜 원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추구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욕망에 끌려가는 삶과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는 삶의 차이도 여기에서 생긴다. 저자는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인간이 욕망의 주인이 되어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참다운 ‘소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자유와 소유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면서도 그것에 지배되지 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소유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돈을 잘 다루려면 욕망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돈은 매일 사용하지만 능숙하게 다루기는 쉽지 않다. 얼마나 벌고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에는 자신의 욕망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돈을 잘 다루려면 마음속의 욕망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돈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경제적 지식의 문제를 넘어선다. 자신의 욕망과 돈의 관계를 이해하고, 돈을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과 자신이 어떤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일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돈과 욕망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욕망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이다.

욕망은 인간을 발전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헛된 욕망에 집착하면 소중한 삶의 다른 가치를 놓칠 수도 있다. 돈 역시 삶을 안정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면 인간이 오히려 돈에 좌우될 수 있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경제적 인간이 욕망을 버리는 방법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가면서 그것을 스스로 조절하고, 돈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경제적 안정과 인간적인 삶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고, 물질적 욕망을 안으로부터 조절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욕망에 끌려가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책이 찾아가는 경제적 인간의 모습은 마음의 여유와 자부심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다룰 줄 아는 인간이다. © 연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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