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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리스크를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


기업에는 여러 종류의 리스크가 존재한다. 시장가격이 변하고 거래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 업무 과정에서 사고와 오류가 발생하고 새로운 사업이나 투자에 대한 판단이 예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법률과 규제, 평판, 재무보고와 관련된 문제도 기업의 목표 달성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위험을 관리해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보험, 외환, 신용, 운영, 상품가격과 같은 위험을 각각의 영역에서 따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암사 출판사의 책 [전사 리스크 관리]가 다루는 ERM(Enterprise Risk Management)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리스크를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데서 나아가 서로 다른 위험을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업의 목표와 전략에 연결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개별 리스크 관리에서 전사 리스크 관리로

전사 리스크 관리는 기존의 리스크 관리를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체계로 바꾸는 개념이 아니다. 이 책은 ERM을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의 자연스러운 발전으로 설명한다.

과거에는 보험, 외국환, 운영, 신용, 상품가격 리스크 등을 서로 분리된 활동으로 관리했다. ERM에서는 이러한 위험을 전략적이고 전사적인 시스템의 일부로 바라본다.

둘의 차이는 관리하는 위험의 종류보다 위험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한 부서에서 발생한 위험이 다른 부서와 기업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위험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ERM의 ‘전사’는 기업에 존재하는 모든 위험의 목록을 만든다는 의미보다 조직 전체의 목표를 기준으로 위험을 연결해서 바라본다는 개념이다.

리스크는 전략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책은 ERM의 개념과 역사를 살펴본 뒤 곧바로 전략의 문제로 넘어간다. 제3장은 ‘ERM 그리고 전략 수립 및 실행에 있어 ERM의 역할’을 다룬다. 리스크를 전략 수립에 통합하고 전략적 리스크에 대한 조직의 태도와 문화를 형성하며, 리스크 평가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문제를 살펴본다. 이러한 구성은 ERM에서 리스크 관리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업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투자하며 변화를 시도한다. 이 과정에는 기회와 함께 불확실성이 따른다. 따라서 리스크 관리가 전략이 결정된 뒤 위험을 줄이는 후속 활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전략을 선택할 것인지 판단할 때 그 전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함께 고려하고, 기업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ERM에서는 전략과 리스크 관리가 하나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만난다.

이사회에서 현업까지 리스크를 함께 바라보다

전사적인 리스크 관리는 리스크 관리부서만으로 실행할 수 없다. 책은 전략에 이어 이사회와 경영진의 역할을 다룬다. 리스크 감독에 대한 이사회의 책임, 고위경영진의 리더십, 내부감사와 외부감사의 역할, ERM 실행전략을 함께 살펴본다. 이어 최고리스크책임자(CRO), 리스크 인식 문화, ERM 프레임워크, 핵심 리스크 지표(KRI)를 다룬다.

이러한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역할의 연결이다. 이사회는 중요한 위험을 감독하고 경영진은 조직의 목표와 리스크를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CRO와 리스크 관리 기능은 전문적인 관리체계를 지원하며, 현업에서도 리스크를 일상적인 업무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책이 강조하는 전사적 관점은 결국 리스크에 관한 정보와 판단이 조직의 일부에 머물지 않도록 만드는 것과 연결된다.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가

ERM의 목적은 모든 위험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이 새로운 사업과 투자, 혁신을 추진한다면 일정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위험을 어느 정도까지 감수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책은 이를 실제 경영에 적용하기 위한 여러 도구를 다룬다. 리스크 용인 수준을 설정하고, 리스크 워크숍을 통해 중요한 위험을 찾아내며, 전사 리스크 프로필을 작성한다. 이어 위험의 중요도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고 리스크를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이 도구들의 의미는 각각의 기법 자체보다 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더 분명해진다. 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의 수준을 정하고, 중요한 위험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판단한 뒤, 그 결과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리스크 관리는 위험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활동에서 실제 경영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위험의 관계를 살펴보다

책의 중반 이후에는 시장 리스크, 신용 리스크, 운영 리스크, 재무 리스크를 비롯해 법률·평판 리스크와 재무보고·공시 리스크까지 다양한 위험을 다룬다.

각각은 별도의 전문영역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험이다. 그러나 ERM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을 다시 하나의 기업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운영상의 문제가 재무적 손실로 이어지고 법률 문제와 평판 훼손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하나의 사업전략 역시 시장 리스크와 운영 리스크, 재무 리스크를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개별 리스크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와 전사적인 관점은 서로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다.

각 위험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면서도 그 위험이 다른 위험 및 조직의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함께 이해하는 것이 ERM의 역할이다.

하나의 방법론보다 다양한 경험을 모은 책

[전사 리스크 관리]는 한 명의 저자가 하나의 ERM 모델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존 프레이저와 베티 심킨스가 편집하고 여러 학자와 실무 전문가가 참여한 6부 28장의 종합서다. 36명의 ERM 전문가가 참여했으며, 실제 사례와 연구자료, 보고서, 설문, 이사회 연구 등 다양한 자료를 담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전반부에서는 ERM의 개념과 역사, 전략과 거버넌스, 문화와 실행 도구를 다룬다. 중반부에서는 구체적인 리스크 유형을 살펴보고, 후반부에서는 학술연구와 실무 사례, 신용평가사의 영향, 신흥국의 ERM, Hydro One의 사례까지 범위를 넓힌다.

ERM을 하나의 정답이나 정형화된 절차로 제시하기보다 실제 조직에서 ERM을 구축하고 운영할 때 검토해야 할 여러 관점과 경험을 한데 모은 것이다.

ERM은 리스크를 고려하며 경영하는 방식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ERM의 프레임워크와 실무는 계속 발전해왔다. 기업이 직면하는 구체적인 위험 역시 달라졌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루는 기본적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업의 여러 부서에서 관리하는 위험을 서로 분리된 문제로만 볼 것인가. 전략을 수립할 때 그 전략이 가져올 위험을 함께 검토할 것인가. 중요한 위험을 이사회와 경영진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조직이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수준과 실제 자원배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이러한 문제는 특정한 ERM 프레임워크의 버전보다 더 오래 남는다. [전사 리스크 관리]가 보여주는 ERM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별도의 기능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선택하며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 리스크에 대한 판단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사 리스크 관리는 단순히 위험을 줄이는 기술을 넘어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서 어떤 기회를 추구할 것인지 판단하는 경영의 문제로 이어진다.

개별 리스크를 따로 관리하는 데서 조직 전체의 위험을 함께 바라보는 것으로, 위험을 사후에 통제하는 데서 전략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미리 고려하는 것으로 시선을 넓히는 것. [전사 리스크 관리]는 이러한 ERM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폭넓은 이론과 실무 경험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 연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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