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이어폰 없이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는 사람, 카페에서 여러 좌석에 짐을 올려놓고 혼자 사용하는 사람, 공공시설에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큰소리를 내는 사람. 일상에서 한 번쯤 마주쳤거나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봤을 법한 장면들이다.
이런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이 불편을 겪더라도 당사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자신의 돈을 내고 이용하는 공간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거나, 법으로 금지된 행동도 아닌데 왜 간섭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물론 누구나 공공시설을 이용할 권리가 있고 자신의 편의를 추구할 자유도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어도 괜찮은 것일까. 법으로 금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행동이든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염치’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염치는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살피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평가를 의식하는 태도와는 다르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의 기준을 세우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은 이러한 감각이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내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는 일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이어폰 없이 큰 소리로 음악을 틀면 주변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카페에서 자리를 이용할 권리가 있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여러 좌석을 차지하면 다른 사람의 이용 기회가 줄어든다. 자신에게는 사소한 편의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장소는 서로 다른 목적과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행동한다면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공공장소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권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도 함께 인정하는 태도다.
내가 누리는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만나는 순간에는 서로를 위한 조정이 필요하다. 때로는 목소리를 낮추고, 조금 기다리고, 자신의 편의를 일부 양보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은 특별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기 위한 기본적인 배려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괜찮은 것일까
공공장소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종종 법과 규정이 판단의 기준으로 등장한다. 법으로 금지된 행동인지, 이용 규칙을 위반했는지, 처벌할 수 있는 일인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다. 물론 법과 규정은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명확하게 정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법과 규정만으로 일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정도로 큰 목소리로 통화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의 시간을 지나치게 빼앗는 행동이 언제나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동료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행동이 반드시 법이나 사내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행동을 모두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법은 사회 구성원이 지켜야 할 중요한 기준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행동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윤리의 역할이 드러난다. 윤리는 어떤 행동이 허용되는지를 넘어,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타인의 입장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질서는 법과 규정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배려와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서도 유지된다.
나이를 먹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다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닮고 싶은 어른과 닮고 싶지 않은 어른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어른을 보면서 좋은 모습을 배우기도 한다. 반대로 나이나 지위를 앞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사소한 잘못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행동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어른이 된 뒤에도 어린 시절의 생각을 그대로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불편을 지나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경험과 나이를 앞세워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른다운 태도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신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불편한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잘못했을 때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에게 정당한 요구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큰소리로 압박하는 행동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과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양보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함께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도 어른의 태도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 있고, 감정이 앞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실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자신의 행동을 지적받으면 누구나 당황하거나 불쾌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순간 상대방의 말투를 문제 삼거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만 집중하면 갈등은 더 커지기 쉽다. 반대로 자신이 놓친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목소리를 낮추고 사과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카페에서 다른 사람의 이용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비워줄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과하면 자신의 권위가 약해지거나 상대방에게 지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한 사과를 할 수 있을 때 서로의 신뢰도 유지할 수 있다.
염치는 단순히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도록 이끄는 마음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윤리의 의미
우리는 윤리라는 말을 들으면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을 떠올리기 쉽다. 특별한 도덕적 결단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리는 일상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조금 낮추는 일, 다른 사람의 공간을 존중하는 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에도 윤리적인 판단이 담겨 있다. 이러한 행동은 거창한 지식이나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 더 생각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김혜영 저자의 [이제 좋은 어른이 될 시간]은 이처럼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며, 필요한 책임을 실천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사회의 여러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쉽게 지적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충분히 살피지 못할 때가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작은 배려는 이러한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권리도 생각하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잘못했을 때 변명보다 사과를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쌓이면서 사람 사이의 신뢰도 형성된다.
다음 세대는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자라지만, 어른들의 행동을 보면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공공장소에서는 자신의 편의만 앞세운다면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배워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규칙을 지키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규칙은 무시하거나, 잘못했을 때 사과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자신의 실수는 인정하지 않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보여주는 행동은 다음 세대가 사회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어른이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필요한 부분을 고치려는 태도를 보여줄 수는 있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은 일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의 태도다.
우리는 종종 사회가 이전보다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보면서 염치가 사라졌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염치가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지금 우리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다. 염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때도 타인의 입장과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생각하는 마음이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연암사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제 좋은 어른이 될 시간]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에는 특별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순간부터 시작할 수 있다. © 연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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