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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든 순간에 철학을 읽는 이유


살다 보면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나서 후회하고,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몰아붙인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금주 저자의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 철학책을 읽다]는 이러한 일상의 순간에서 철학을 펼쳐 드는 책이다.

중학교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불안과 절망을 경험했고, 철학자의 문장을 읽으며 위로와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책에는 분노와 자기 비난, 부모로서의 고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불안과 슬픔처럼 저자가 실제 삶에서 마주한 문제가 등장한다.

철학자의 사상을 먼저 설명하고 현실의 사례를 덧붙이는 방식보다 자신의 삶에서 출발해 그 순간에 필요한 철학의 문장을 찾아간다. 철학은 그렇게 일상으로 들어온다.

자신의 문제에서 철학을 시작하다

이 책은 철학자나 철학사에 따라 구성되어 있지 않다.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 ‘타인이 지옥으로 느껴지는 날’, ‘세상이 삐딱하게 보이는 날’, ‘마음이 무너져 슬픈 날’이라는 네 가지 삶의 상황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장에서 저자의 시선은 자신에게 향한다. 분노와 마주하는 순간에는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를 읽는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펼치고,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삶에서는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만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느낄 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자유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는다.

철학책을 펼치는 계기는 거창한 철학적 문제가 아니다. 오늘 화를 냈다는 것,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것, 쉬고 싶다는 것,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것처럼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어려움을 생각하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책은 두 번째 장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시선을 넓힌다. 사람들과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기도 하고, 험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때도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자신이 정한 선을 상대가 넘어오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노자의 노자, 이이의 격몽요결, 공자의 논어, 장자의 장자, 스피노자의 에티카, 에픽테토스의 삶의 기술, 에피쿠로스의 쾌락과 연결한다.

여기에서도 철학은 일상과 떨어져 있지 않다. 오지랖과 험담, 뒷담화, 솔직함, 세대 사이의 관계,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경계처럼 구체적인 경험이 철학책을 읽는 출발점이 된다.

철학자의 문장을 읽으면서 상대방의 행동만 바라보던 시선을 자신의 태도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돌려본다.

자신에게서 세상으로 시선을 넓히다

세 번째 장에서는 개인과 관계를 넘어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본다. 무엇인가를 계속 소비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늘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담,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낯선 존재를 대하는 태도 등이 주제가 된다.

저자는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과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에리히 프롬의 희망의 혁명과 소유냐 존재냐,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 등을 함께 읽는다. 자신의 감정에서 시작한 철학 읽기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소비와 행복, 소유와 타인에 대한 생각도 철학자의 관점을 만나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철학은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의 생각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마음이 무너진 날에도 철학책을 펼치다

마지막 장은 삶에서 피하기 어려운 슬픔과 상실을 다룬다. 나이가 드는 것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마주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고,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어떻게 위로를 건넬지 고민한다. SNS를 통해 전달되는 위로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때 저자가 함께 읽는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세네카의 철학자의 위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몽테뉴의 수상록,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 등이다. 마지막에는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사소함이 건네는 위로’를 생각한다.

삶에는 생각을 조금 바꾼다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이 책에서 철학자의 문장은 그러한 고통을 없애는 처방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겪는 감정과 철학자의 문장을 나란히 놓고 지금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본다. 슬픔을 서둘러 밀어내기보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찾아가는 것이다.

철학자의 문장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다

이 책에는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가 등장하지만 중심에는 저자의 일상이 있다. 교사로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 두 아이의 엄마로서 느낀 고민,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생긴 감정, 몸과 마음이 지쳤던 순간들이 철학책을 펼치는 계기가 된다.

이 점은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 철학책을 읽다]가 철학을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철학을 이해한 뒤 삶에 적용하는 일방향의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삶에서 문제가 생기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다가 철학자의 문장을 만나며,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 삶의 경험 → 철학자의 문장 →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반복되는 구조다.

저자가 프롤로그의 제목을 ‘불안을 달래기 위해 읽고 씁니다’라고 붙인 것도 이러한 책의 성격과 연결된다. 읽고 쓰는 행위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삶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이 된 것이다.

서로 다른 철학자를 삶의 문제로 만나다

이 책에는 세네카와 아리스토텔레스, 에픽테토스 같은 고대 철학자부터 니체와 러셀, 에리히 프롬, 푸코, 누스바움에 이르는 현대 사상가까지 등장한다.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이이와 지눌, 한용운도 함께 읽는다.

철학적 전통이나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서로 상당히 다른 사상가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을 하나의 철학적 체계로 묶으려 하지 않는다.

분노할 때 세네카를 만나고, 관계 때문에 힘들 때 장자와 스피노자를 읽으며, 행복을 생각할 때 아리스토텔레스를 펼치는 방식으로 각각의 철학을 자신의 삶과 연결한다.

이러한 구성은 철학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을 보여준다. 철학 전체를 먼저 이해해야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서 출발해 한 권의 고전을 만날 수도 있다. 한 철학자의 문장이 자신의 경험을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면 그곳에서 철학 읽기가 시작된다.

철학은 삶의 정답보다 바라보는 관점을 넓힌다

책에서 다루는 문제에는 하나의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 많다. 좋은 부모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 우리는 늘 행복해야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답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 철학책을 읽다]는 철학을 억지로 강요하거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대신 삶의 순간마다 철학자의 문장을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볼 수 있도록 한다.

철학을 읽는 의미는 여기에서 생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잠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 다른 시대와 삶을 살았던 사람이 인간과 삶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익숙한 관점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 넓어질 수 있다.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 철학을 읽는다는 것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익숙하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운 순간은 훨씬 구체적이다. 화를 낸 자신이 싫은 날이 있고,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는 날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고,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마음이 무너지는 날도 있다.

이금주 저자는 그런 순간에 철학책을 펼친다. 자신의 경험을 철학자의 문장에 비추어보고, 그 문장을 다시 자신의 삶으로 가져온다. 철학을 통해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지금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바라보고,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관점을 찾는다.

이 책의 제목에서 중요한 것은 ‘철학책’만큼이나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이다. 철학은 삶과 동떨어진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든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될 수 있다.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 철학책을 읽다]는 철학자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보다 삶의 구체적인 순간에 철학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중학교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이금주 저자는 자신의 불안과 분노, 관계의 어려움과 슬픔을 꺼내고 그 곁에 동서양 철학자의 문장을 놓는다.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해 타인과의 관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슬픔과 상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철학은 삶의 정답을 대신 내려주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삶에서 문제가 생기고, 철학자의 문장을 만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 나를 사랑하기 힘든 날 철학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볼 언어와 관점을 찾는 일이다. © 연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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